#1. 적응은 해결이 아니다
작년 12월, 아기가 태어났다.
임신, 출산, 육아의 경험을 통해 느낀건, 모든 과정이 "기록"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임신 중에는 아기 엄마의 혈압과 체중을 측정하고, 초음파를 통해 아기의 체중, 머리직경, 머리둘레, 복부둘레, 허벅지 길이를 측정한다.
출산이 임박하면 진통 패턴을 기록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아기의 몸무게와 키, 수유시간과 수유량, 대변 시간과 대변 사진, 수면시간 등을 기록한다.
"기록"은 아기와 산모의 건강상태를 파악하며, 아기의 생활패턴과 발달상태를 파악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러한 "기록"은 주로 "앱"을 통해 기록한다.
대표적으로 "마미톡", "베이비타임"이 있다. 더 있을 수도 있는데 나는 이 두개만 확인해봤다.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는 초음파 영상 회사에서 제공하는 앱을 사용할 수 있긴하나 마미톡이 초음파영상이 바로 연동이되어서 마미톡으로 사용했다.
"기록"이 자동으로 뚝딱 되면 좋겠지만 아니다.
종이에서 디지털로 입력하는 도구가 바뀌였을 뿐, 입력은 여전히 아날로그이다.
부지런하게 누락없이 입력을 잘 해야 데이터가 쌓이고, 데이터를 통해 의미있는 패턴을 확인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아기를 키우다보면 입력행위에 허들이 높다는 것을 알게된다.
두 손은 늘 부족하다. 수유가 끝나고 나서 기록하려다 놓치고, 기저귀를 갈다가 잊고, 재우다가 같이 잠들어버린다.
특히 새벽 두 시에 아기를 안고 수유를 하면서 앱을 열고 시간을 입력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대표앱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확한 정보보다 행위와 시간만 빠르게 입력할 수 있는 UX를 제공하고 있다.
수유, 기저기, 모유수유, 유축 등 다양한 행동에 대한 아이콘을 화면에서 바로 노출하고, 해당 아이콘을 터치하면 해당 시간에 기록이된다. 상세한 ml나 사진 등의 정보는 이후에 추가로 입력하게 된다.
아기 100일 이전에는 이러한 UX가 상당히 불편했다.
아기가 3시간, 2시간마다 일어나서 밥을 먹이고 기저기 갈아주고 재우고 하는데 언제 앱 실행하고 입력하는가?
이 시기에 나는 "앱을 열지 않고 물리적인 버튼을 누르면 기록되면 편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이가 100일이 지나고 그 생각은 흐릿해졌다.
기존 앱 UX에 익숙해졌고, 어느 시간대에 수유를 했는지, 언제쯤 다시 울기 시작하는지 이제는 어느 정도 몸이 기억한다.
그래서 한때 강하게 느꼈던 “물리 버튼 기록 장치” 아이디어가 지금도 정말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불편함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불편함에 적응한 것에 가깝다.
육아는 여전히 두 손이 부족한 일이고, 기록은 여전히 입력해야만 남는다.
그래서 한번 만들어보려고 한다.
물리 버튼을 누르면 기록이 남는 장치. 앱을 열 필요 없이, 화면을 볼 필요 없이, 그냥 손이 닿는 곳에 버튼이 있고 누르면 되는 것.
아기를 보면서도, 새벽에도, 두 손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기록할 수 있도록 만들어보려고한다.